모든 사람을 위한 해결책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은 사실 "아무도 위한 것이 아닌"과 같다.
어느 회사의 비전 페이지를 열어본다. "우리는 혁신적인 기술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갑니다." 멋진 말이다. 그런데 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 회사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나와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없다. 모든 회사의 비전은 비슷하게 웅장하고, 그래서 비슷하게 공허하다.
반면, "당신 집 싱크대 밑에 숨어 있는 바퀴벌레"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멈춘다. 갑자기 귀를 기울인다. 그건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 발명가가 모든 해충을 죽이는 스프레이를 만들었다. 캔에는 '집안의 모든 해충 박멸'이라고 적었다. 훌륭한 제품이었다. 그런데 팔리지 않았다.
어느 날 한 고객이 말했다. "우리 집은 개미가 문제예요. 난 개미를 죽일 제품을 찾고 있어요."
발명가는 깨달았다. 100개의 캔을 네 묶음으로 나눠 다시 라벨을 붙였다.
"개미 박멸"
"바퀴벌레 박멸"
"진드기 박멸"
"벼룩 박멸"
내용물은 똑같았다. 달라진 건 이름 뿐이었다.
그 후 제품은 미친 듯이 팔렸다.
사람은 추상에 반응하지 않는다. 허리가 아플 때, "현대인의 척추 건강"이라는 기사는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왜 허리 왼쪽만 아플까"라는 제목 앞에서는 멈춘다.
좋은 해결책은 "모두에게"가 아니라 "바로 당신에게"라고 말할 때 힘을 갖는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대한 비전은 멋지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건, 지금 누군가의 구체적인 문제를 정확히 가리키는 한 문장이다. 그리고 그 옆에 조용히 놓인 작은 해결책이다.
결국 위대한 것은 크게 외치는 데서 오지 않는다. 한 사람 앞에 앉아, 그의 언어로, 그의 문제를 말해주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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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혹은 파리의 오래된 골목을 걷는 일, 밤에 혼자 카메라를 들고 목적 없이 걷는 일. 수많은 사람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건물과 빛바랜 간판, 오래된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좋아한다. 축구에서는 리버풀을 좋아한다. 단순히 경기를 잘하는 팀이라서라기보다, 오래된 전통과 이야기, 팬들이 만들어온 분위기까지 모두 합쳐 하나의 낭만처럼 느껴지는 팀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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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란 상대에게 마음 한 자리를 내어주는 일
어떻게 하면 내 말이 상대에게 가닿을까
취향의 쓸모
취향은 종종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글을 오래 읽는지 같은 것들은 그저 개인적인 기호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취향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사람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에 가깝다. 취향은 선택의 기록이다.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소비할 수 없다. 무엇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