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혹은 파리의 오래된 골목을 걷는 일, 밤에 혼자 카메라를 들고 목적 없이 걷는 일. 수많은 사람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건물과 빛바랜 간판, 오래된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좋아한다.
축구에서는 리버풀을 좋아한다. 단순히 경기를 잘하는 팀이라서라기보다, 오래된 전통과 이야기, 팬들이 만들어온 분위기까지 모두 합쳐 하나의 낭만처럼 느껴지는 팀이라서 좋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어떤 정신과, 그걸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앤드류 로버트슨 같은 선수를 좋아한다. 화려함보다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뛰고, 한 팀에 오래 헌신하면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은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오래 응원하고 싶어진다.
음악도 비슷하다. 한로로의 노래에 담긴 젊고 서툰 마음을 좋아하고, 아이유가 오랜 시간 자기 이야기를 노래해온 것도 좋다. 김수영의 조금 쓸쓸한 목소리도, 잔나비가 가진 오래된 듯한 분위기도 좋아한다. 《진격의 거인》을 몇 번이고 다시 떠올리는 것도 결국 그 안의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수없이 잃고 좌절하면서도, 결국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락페스티벌을 좋아한다. 하루 종일 서 있고, 땀에 젖고, 때로는 비까지 맞으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음악을 듣는 그 시간이 좋다. 좋아하는 노래의 첫 소절이 시작되는 순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함성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함께 뛰는 풍경도 좋다. 음악을 듣는 방법은 훨씬 편해졌는데도 굳이 그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다는 사실도.
요즘은 자꾸 그런 낭만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낭만이라는 말을 꺼내면 조금 낡은 사람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정확해지고 있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 어떤 음악을 들을지까지 알고리즘이 먼저 추천해준다. 몇 시간을 들여 해야 했던 일은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게 되었고,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는 길은 점점 사라진다.
좋은 일이다. 나 역시 그런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변할수록, 효율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들에 자꾸 마음이 간다.
멀리 돌아가면서까지 보고 싶은 풍경이 있고, 굳이 공연장까지 찾아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 오래된 골목을 목적 없이 걷는 것이 좋고, 조금 낡은 건물과 빛바랜 간판 앞에서 한참을 머물기도 한다. 집에서 더 좋은 음질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인데도 누군가 기타를 메고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린다.
어쩌면 낭만은 대개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굳이 하는 것.
결과만 놓고 보면 조금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손해를 보는 선택이다. 하지만 사람의 삶에는 이상하게도 그런 선택들이 오래 기억된다.
비가 오고 땀이 나도 한곳에 모여 음악을 듣는 사람들, 오래된 거리를 지키는 작은 가게들, 강가에 앉아 별 이유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조금 서툴고, 조금 낡고, 때로는 쓸쓸하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그런 장면들을 좋아한다.
낭만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밴드를 보기 위해 먼 도시까지 가는 일.
친구에게 줄 편지를 직접 쓰는 일.
해가 지는 시간을 맞춰 강가를 걷는 일.
돈이 되지 않아도 만들고 싶은 것을 계속 만드는 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
누군가는 그것을 비효율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효율로 설명할 수 있는 삶은 어딘가 조금 쓸쓸하다.
우리에게는 결과와 상관없이 해보고 싶은 일이 있고,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어도 좋아하는 것이 있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쓰고, 멀리 돌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중에 삶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순간들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했는지보다 어떤 공연에서 미친 듯이 뛰었는지, 얼마나 빠른 길로 갔는지보다 어느 도시의 골목에서 길을 잃었는지, 무엇을 가장 합리적으로 선택했는지보다 무엇을 정말 좋아했는지가 남는다.
그래서 낭만은 단순히 감성적인 취향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잊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세상이 계속해서 더 빠른 방법과 더 합리적인 선택을 알려주더라도, 가끔은 그것과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걸어가 보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실제로 삶에 옮기는 것.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멋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동안 작은 가게를 지키는 사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 주말마다 사진기를 들고 거리를 걷는 사람, 오랫동안 하나의 취향을 사랑하는 사람.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일에 자기 시간과 마음을 계속 내어주는 사람.
그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용기가 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용기.
계산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무언가를 계속하는 용기.
어쩌면 지금 같은 시대에는 그런 용기가 더욱 필요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앞으로 더 편리해질 것이다. 무엇을 만들든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고, 무엇을 알고 싶든 바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것들이 최적화되고 자동화될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오히려 사람이 굳이 하는 일들이 궁금해진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계속하는 것.
별다른 보상이 없어도 마음을 쓰는 것.
왜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좀처럼 놓지 못하는 것.
그런 행동 속에 그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는지가 남기 때문이다.
낭만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시대다.
하지만 어쩌면 낭만은 사라진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너무 바빠서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밤새 노래를 만들고 있고, 누군가는 오래된 가게의 불을 켜고 있으며,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간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잠시 멈춰 선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조금 더 믿어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가끔은 돌아가고, 필요하지 않은 것에 기꺼이 시간을 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낭만을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삶을 효율만으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자꾸 낭만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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